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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장 수집

[나의 문장 수집]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장수연(+김보통 작가)

by 나는된다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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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되는 콘텐츠는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분야를 막론하고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특히 누구에게나 있음 직한 이야기, 우리가 한 번은 겪어봤을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담아내는 기획자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런 기획자들이 어떻게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양한 매체 속에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자극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콘텐츠를 만드는 힘은 무엇인지, 그 출발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어떻게 그 힘을 조율하며 결과물로 만들어내는지, 당사자인 기획자들의 입을 통해 듣는 그 과정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내가 즐겨봤던 프로그램이 이렇게 시작이 되었구나, 이런 방향으로 기획된 거구나 하고 알게 되는 재미와 더불어 그들의 일의 방식이 내 일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에 대한 길잡이가 돼주었다.
무엇보다 각기 다른 콘텐츠를 만든 기획자들이 평범한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것. 결국 그것이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챕터의 이야기가 하나도 흘려들을 것 없이 다 좋았다. 기획자들의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인터뷰어 장수연PD와 강PD의 질문도 훌륭했고. 그중에서도 김보통 작가의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에 남는데, 사실 김보통 작가는 D.P.를 보기 전 에세이로 먼저 접했었다. 그의 에세이가 너무 좋아서 그의 이야기에 더 집중했는지도 모르겠다.아무튼 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를 돌아보고 방향을 틀게 해준 김보통 작가의 인터뷰를 짤막하게 소개해본다.
 


책 소개
잘 만든 작품, 잘된 콘텐츠를 보면 궁금해진다. 누가, 어떻게 기획하고 만든 걸까?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이 책은 최근 2년간 트렌드를 이끌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영상콘텐츠를 만든 PD와 작가 10팀을 인터뷰했다. 유튜브 채널, 예능, 드라마까지 그 콘텐츠를 어떻게 기획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창작 비하인드를 만든 이들이 직접 공개한다. 영웅담도, 성공담도 아닌 직업인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 소개
2008년 MBC 라디오PD로 입사. <써니의 FM데이트>, <양요섭의 꿈꾸는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 <이석훈의 브런치카페> 등을 연출했고, 2021년 오디오전략팀에서 라디오의 확장을 고민하며 팟캐스트 <보면 뭐하니>를 제작, 진행했다. 2년간 43명의 PD와 작가를 인터뷰했다.
20년 전 ‘라디오PD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와 지금, 라디오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달라져가는 것에 이따금 멀미를 느낀다. 최대한 운전석 가까이에 앉아 어지럼증을 견디며 변화를 맞이하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이 책에서 만난 PD들처럼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여전한 꿈이다. 엄마로서의 이야기로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라디오 PD로서의 이야기로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을 썼고 앤솔로지 『돌봄과 작업2』에 참여했다.
출처-알라딘
 

Ch.7 넷플릭스 <D.P.> 김보통 작가

김작가 제가 군대에서 D.P.병으로 복무할 때, 그냥 '사복 입고 밖에 나갈 수 있으니까 좋다'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게 뭐 하는 뻘짓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탈영병을 찾아서 데려오면 부대에서는 또 누군가 때리고 있어요. 때리는 구조를 없애는 게 탈영병을 줄이는 제일 확실한 방법인데 그런 고민보다는 잡아올 생각만 하는 거죠. 탈영병을 잡오는 일을 병사한테 시키는 것, 징집제도하에서 서로가 피해자인 것이 너무 희극 같았어요. 상황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걸 보면 제게 '작가로서의 무언가'가 있긴 있나봅니다.(웃음)

경험이란 어느 순간에 일어난 객관적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관찰하며 주관적으로 '형성'되는 무엇인지도 모른다. 비슷비슷한 연애 이야기, 흔하디흔한 삶의 에피소드여도 이야기를 펼쳐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아는 맛이 새로운 맛으로 바뀐다. 어쩌면 모든 창작자가 추구하는 게 이런 재미일 수도 있다. 세상에 다시없을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려는 욕심보다, 너도나도 겪어본 그곳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조각을 발견하기를 꿈꾼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자기 경험에서 가져왔다는 김보통 작가의 작품은 우리의 일상에서 크게 궤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울림을 준다. 하여, 그가 했다는 경험이 얼마나 드라마틱했을지가 아니라, 그걸 오래 들여다본 시선이 어떤 온도였을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장PD 이런 얘기를 들으면 타고난 창작자이신 것 같지만, 사실 작가님의 에세이를 보면 직장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우울한 직장인에서 '이야기를 짓는 사람'으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김작가 네. 저 그 회사에 강의하러 갈 예정이에요. 거의 모든 강연 요청을 거절했는데, 이건 약간 <복수혈전> 같더라고요. 섭외 전화를 받고 제가 그 회사 출신인 걸 아느냐고 물었어요. 알고 부르는 거래요. 가면 좋은 이야기를 하나도 못 할 것 같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부르는 거라고 해서 알겠다고 했죠. 가서 비장하게 욕만 하다 오려고요. 욕먹고 싶다고 부르는데 가야죠.
○장PD 재밌네요, 인생이.
●김작가 진짜 인생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정말 너무너무 나를 죽고 싶게 만드는 회사였는데.
 
○장PD (중략) 선우정아의 노래 중에 '도망가자'라는 곡이 있는데 첫 가사 이래요. "도망가자/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여기서 핵심은 '어디든'이라는 단어 같아요. 어디든 가야 하는 게 도망이죠. 목적지가 있으면 여행일 거예요.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설령 그게 금방 잡힐 곳이라 해도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 탈영이야말로 도망의 속성을 정확히 보여주는 예시 같아요. 이게 <D.P.>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산 이유라고 생각해요. 도망가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학교, 회사, 관계, 타인의 시선, 외로움, 극한의 생활고, 때로는 삶 그 자체로부터 도망가고 싶기도 한 게 인생이지 않나요. 더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드라마 속 군대의 모습이 곳곳에서 재현되기도 하고요.
●김작가 (중략) 도망의 좋은 점은 비장하지 않다는 거예요. 일단 내 눈앞의 똥이 싫어서 피하는 거거든요. 똥에 맞서 싸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잖아요. 비장해지지 말고 도망쳐서 일단 뭐라도 하자, 그게 다음 단계로 이어지다가 길이 보이는 거지 비장해지면 도망치지 못하고 과감하게 도전을 한단 말이에요. 도전은 높은 확률로 깨져요. 깨지면 좌절하게 되고요. 저는 그게 악순환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이건 사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에요. 자기는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축구를 하며 살았다"보다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 날 축구 선수가 되어 있었다"가 더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게 좋아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나는 10년 뒤에 넷플릭스에서 1등 하는 드라마작가가 될 거야'라고 비장하게 생각했으면, 아마 중간에 좌절하고 고꾸라졌을 거예요. '잘 모르겠지만 뭘 해도 먹고는 살겠지'라며 살다보니까 이런 날이 온 게 아닌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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