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밤은 익어가기 좋고, 겨울밤은 깊어지기 좋다. 봄밤은 취하기 좋고 가을밤은 오롯해지기 좋다. 당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이' 익어가고 깊어지는지, 취하고 오롯해지는지 묻는다면? '무엇이든'이라 대답하겠다.
사랑, 미움, 한숨, 그리움, 희망, 불행. 진부하게 거론되지만 원래 그 의미가 무거운 말들은 밤에 한층 더 무거워진다. 겨울밤은 그중 더 무겁다. 겨울밤에는 특별한 게 있다.
-《모월모일》 「밤이 하도 깊어」 중에서-
2
결국 행복은 '바라는 게 없는 상태'다. 소소한 창작에 몰두하거나 고요한 내면을 돌보기 위해 시선을 자기 내부로 돌리는 일이다. 우리는 작은 행복을 잊고 살다, 일상이 비틀어질 때에야 비로소 '진짜 행복'을 생각해보는지도 모른다. 평생 '큰 행복'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그런 건 없다. 큰 행복이란 것. 행복에게 덩치가 있다면 분명 아주 작을 것이다! 눈 밝은 사람만 찾을 수 있을 만큼.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은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에게, 세상에게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바란다면 오직 스스로에게만, '신실하게' 바랄 것. 무엇보다 행복은 '바라기'보단 '찾기'에 가깝다. 찾아내고 감사하기. 이 지독한 감기에서 놓여나면, 다시 행복 일기를 써야겠다. 매일매일 쓸 테다. 우선 콧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열이 나지 않아 행복하다고 써야지.
-《모월모일》 「호두 세 알, 초코쿠키 한 개」 중에서-
3
나를 처음으로 춤추고 싶게 만든 아무가 피나 비우쉬는 연습 시간에 이런 것을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여러분들이 갓난아기나 아이들에게서 보았는데 여러분 자신은 이미 그것을 잊고 말아서 아쉬운 것. 더 이상 없어서 섭섭하다고 생각하는 것,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아 아쉬워하는 그런 것"(요헨 슈미트, 《피나 바우쉬》, 이준서 옮김, 을유문화사, 2005)을 알아내야 한다고.
그게 뭘까? 내가 잊고 말아서 존재하는 않는 것으로 만든 것. 많겠지. 너무 많을 것이다. 번개와 비, 어두운 하늘,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지금.
-《모월모일》 「비 오는 날 발레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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