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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장 수집

그러 날도 있다 - 마스다 미리

by 나는된다 2021.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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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진다고 꼭

세상에 찌드는 건 아니야.

 

진홍색 정열

 

 새로 배우기 시작한 태극권. 포즈를 잘 기억하지 못해 분투 중이다.

 내가 배우고 있는 태극권은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강좌 중 하나인데 탈의실 광경이 몹시도 유쾌하다. 플라멩코 의상으로 갈아입는 사람 옆에 발레 수업을 마치고 의상을 벗는 사람이 있다. 거기에 뒤섞여 태극권 팀도 옷을 갈아입니다.

 평일 낮인 이유도 있어서 수강생들은 내 엄마뻘 세대인 50대와 60대가 중심이다. 화사함보다는 '왁자지껄'한 공간이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저녁 반찬 이야기로 수다 꽃을 피우는데, 항상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듣는다.

 즐거운 대화만 있진 않다. 질명이나 간병에 관한 이야기도 들린다. 특히 간병 이야기는 고생이겠다 싶어서 마음이 무거워질 때도 있다. 다만, 그런 말이 들리는 쪽을 돌아보면 새빨간 플라멩코 의상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나는 그럴 때면 황홀해진다. 매일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플라멩코를 추려는 그 강한 정신에 황홀해지고 만다.

 "다 늙어서 그런 의상이나 입다니."

 이렇게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인간일 것이다. 나이에 맞게, 남자답게, 여자 주제에, 이 얼마나 답답한 말인가. 굳이 답답함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살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말을 안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는 편이 즐겁게 살 수 있고 또 훨씬 멋있으니까.

 

아직은 과거보다

내일로 나아가고 싶어.

 

행운의 은구슬

 

 그다지 추천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파친코를 좋아한다. 좋아는 해도 대충 한 달에 두세 번쯤 훌쩍 들르는 정도이고, 쓰는 돈도 5천 엔가량이다.

 파친코를 안 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묻는다.

 "뭐가 재미있어?"

 그렇게 물어봐도 대답하기 어려운데, 몇 번인가 찾아오는 손끝이 화르르 뜨거워지는 순간의 그 느낌이 좋다. 돈을 따면 당연히 즐겁다. 따지 못하더라도 리치(숫자 세 개 중에 두 숫자가 일치하거나 크게 딸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를 말한다.)가 여러 번 나와 심장이 마구 뛸 때의 기분도 나쁘지 않다.

 파친코를 해본 적 없는 분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박이 나기 직전에는 리치라는 것이 온다. 이 리치에도 종류가 다양한데, 시간이 길고 화려한 리치일수록 대박이 날 확률이 높다. 단, '확률이 높다'고 꼭 대박이 나지 않는 것이 묘미다. 파친코 기계의 불이 반짝반짝 빛나고 화면 속 등장인물이 요란하게 대사를 외쳐서,

 "이거 틀림없이 대박이야!"

 숨을 헐떡이는데 미끄덩······. 기대감을 자극하는 시간이 길면 정말이지 더 화가 난다. 한편으로 화려한 리치가 아니라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가 번쩍 대박이 나서 기절초풍할 때가 드물게 있다. 그때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뛸 정도로 기쁘다. 하지만 대박이 났다고 너무 기뻐하면, 따지 못한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를 테니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열매를 맺지 못할 때가 있고, 어느 날 갑자기 행복을 움켜쥐는 순간도 있다. 파친코를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식으로 뜻하지 않게 인정을 받는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 파친코와 나 자신을 겹쳐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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