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아홉 시가 된다.
매일 겪어도 매일 억울하다.
아니, 뭐 했다고 아홉 시야······.
투명한 버스를 네 대쯤 구경하고 나서 걸음을 이어갔다. 이촌 한강공원에 이르렀을 땐 발이 아파 더 걸을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한 캔씩 사서 강변 계단에 앉았다. 건너편의 불 밝힌 도시를 바라보며 웃자란 풀들 사이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건 초여름을 지날 무렵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캄캄한 하늘 위론 이따금 밤 비행기가 반짝이며 지나갔다. 그때마다 잔디밭 어딘가의 돗자리에서 "비행기다!" 하고 반갑게 외치는 꼬마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이럴 때 보면 행복 진짜 별거 없다."
강은 영감처럼 또 그런 소릴했다. 어제의 대화를 복기하며 행복의 최대치에 대해 곰곰 생각하던 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름이 오는 내내 날씨가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매일 이렇다면 살 만할 텐데 싶은 날씨.
지난 한 달을 가만 돌이켜보면 나는 맑은 공기와 얘기 나눌 친구와 맥주만 있으면 어김없이 행복했던 거 같다. 그게 행복의 3요소라니. 너무 쉽네. 그렇다면 의외로 내가 오래 찾아 헤맨 답도 쉬운 것일지 모르겠다.
잘 산다는 게 대체 뭘까? 그건 그냥 내가 오늘 하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그런 일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즐거움을 찾아다녀야 할까? 크든 작든 내가 느낀 즐거움들에 이미 그 답이 나와 있는 게 아닐까? 언제 즐거운지, 언제 웃었는지 기억하고 산다면 그걸로 충분한 인생일지 모른다.
그날 한강 둔덕에 앉아 느낀 마음을 저울에 재 본다면 아마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가 나왔을 것이다. 안 재어 보아도 어쩐지 알 것 같다.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자꾸 잘못 산다. 어떻게라도 답 비슷한 것에 가까워져 보려고, 공기가 맑은 날이면 돗자리와 맥주를 챙겨 한강에 간다.
-《평일도 인생이니까》 「손흥민 선수도 사는 일은 어렵겠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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